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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웨이의숲세트(전2권)
카테고리 소설 > 일본소설 > 일본소설일반
지은이 무라카미 하루키 (문사미디어, 20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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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임홍빈 옮김, 《노르웨이의 숲 (下)》, 문사미디어(2008).

 

 

  무슨 소리를 하든, 세상 사람들이란 자기들이 믿고 싶은 말밖엔 믿지 않는 법이거든.

 

  - p.30.

 

 

 

  “저, 와타나베, 자긴 영어의 가정법 현재와 가정법 과거 차이를 제대로 설명할 수 있어?”라고 갑자기 그녀가 내게 질문했다.

 

  “설명할 수 있을 거야.”라고 나는 말했다.

 

  “그럼 묻겠는데. 그런 게 일상생활 속에서 무슨 도움이 되지?”

 

  “일상생활에서 무슨 도움이 된다든가 하는 건 별로 없지.”라고 나는 말했다. “구체적으로 무슨 도움이 된다기보다는, 그런 게 사물을 좀 더 체계적으로 파악하기 위한 훈련이 된다고 나는 생각하는데.

 

  - p.62. (미도리와 와타나베의 대화)

 

 

 

  “토론이라는 건 또 왜 그렇게 끔찍한지. 모두 다 알고 있는 듯한 얼굴을 한 채 어려운 말만 쓰는 거야. 나는 이해가 잘 되지 않아서 그때마다 질문을 했어. ‘그 제국주의적 착취란 무슨 뜻입니까? 동인도회사와는 무슨 관계가 있습니까?’ 라든가, ‘산학 협동체 분쇄란, 대학을 나온 다음에 회사에 취직해서는 안 된다는 뜻입니까?’ 하고 말이야. 하지만 아무도 설명해주지 않았어. 오히려 정색을 하면서 화를 내는 거야. 이런 얘기 믿을 수 있겠어?”

 

  “믿을 수 있어.”

 

  “그런 것도 모르고 어떡할 거냐, 무슨 생각을 하면서 살고 있는 거냐? 그걸로 끝. 어떻게 그럴 수 있지? 물론 난 그다지 머리가 좋지 않은 서민이야. 하지만 세상을 지탱하고 있는 게 서민이고, 착취당하고 있는 것도 서민이잖아. 서민이 알지 못하는 말이나 지껄이면서 뭐가 혁명이고, 무슨 놈의 사회 변혁을 하겠다는 거야. 나 역시 세상을 더 좋게 하고 싶어. 만일 누군가가 정말 착취당하고 있다면, 그걸 멈추게 해야 한다고 생각해. 그렇기 때문에 질문하는 거 아니겠어, 그렇잖아?

 

  “그래.”

 

  “그때 난 생각했어. 이들은 모두 사기꾼들이라고 말이지. 적당히 그럴듯한 말을 지껄이고는 우쭐해져서, 새로 들어온 여학생을 감탄시키고는 스커트 속으로 손을 집어넣을 생각밖에 하지 않고 있다고, 걔네들은. 그리고 4학년이 되면 머리를 짧게 깎고 미쓰비시 상사니 TBS니 IBM이니 후지 은행 같은 데 재빨리 취직해서, 마르크스 따위는 읽어본 적도 없는 귀여운 신부를 맞이하고, 어린애를 낳으면 제법 그럴듯한 이름을 붙이는 거지. 무슨 놈의 산학 협동체 분쇄야. 너무 우스워서 눈물이 날 지경이야. 다른 신입생들도 웃겨. 다들 아무것도 모르면서 아는 체하며 우쭐거리는 거야. 그러고는 나중에 내게 이렇게 말하지. 너 바보구나, 알지 못하더라도 네, 네, 그렇군요, 그러면 되잖아, 하고. ……(중략)…… 아무튼 이 대학에 다니는 것들은 거의 모두 사기꾼들이야. 모두 자신이 뭔가를 모른다는 걸 남들이 알아챌까 봐 잔뜩 겁을 집어먹고 벌벌 떨면서 지내고 있다고. 그래서 모두 똑같은 책을 읽고 똑같은 말을 지껄이며, 존 콜트레인을 듣거나 파졸리니의 영화를 보면서 감동하는 거지. 그런 게 혁명이야?”

 

  “글쎄? 나는 실제로 혁명을 눈으로 본 게 아니니 뭐라고 말할 수가 없군.”

 

  “그런 게 혁명이라면, 난 혁명 따위는 필요 없어. 주먹밥에 우메보시밖에 넣지 않았다는 이유로 난 틀림없이 총살당해버릴 거야. 자기도 틀림없이 총살당할 거고. 가정법을 올바로 이해하고 있다는 따위의 이유로.

 

  “그럴지도.”라고 나는 말했다.

 

  “난 알고 있어. 난 서민이니까. 혁명이 일어나든 일어나지 않든지 간에 서민들은 변변찮은 곳에서 아웅다웅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걸. 혁명이라는 게 뭐야? 기껏해야 관청 이름이 바뀔 뿐이잖아. 하지만 걔들은 그런 건 전혀 모르고 있어. 그 시답잖은 말이나 지껄여대고 있는 애들 말이야. 자기, 세무서 직원 본 적 있어?”

 

  “없는데.”

 

  “난 여러 번 봤어. 그들은 집 안으로 함부로 들어와서 으스대곤 해. 장부가 뭐 이래? 당신들 엉터리로 장사를 하고 있구먼. 이게 정말로 경비란 말이오? 영수증 봅시다, 영수증! 우리는 한쪽 구석에서 조용히 앉아 있다가, 식사 때가 되면 제일 비싼 초밥을 시켜 대접하지. 하지만 우리 아버지는 세금을 덜 내려고 속임수를 쓴 적은 한 번도 없다고, 정말. 아버진 그런 분이시거든. 워낙 고지식해서. 그런데 세무서에서 나온 직원들은 끊임없이 꼬투리를 잡는 거야. 이건 수입이 너무 적지 않으냐 해가면서. 웃기지 말라고 그래. 수입이 적은 건 벌이가 시원찮기 때문이잖아. 그런 소릴 듣고 있으면 난 분해서, 부자들한테나 가서 그런 짓을 하라고 소리를 지르고 싶어져. 만일 혁명이 일어나면 그런 세무서 직원의 태도가 달라지리라고 생각해?”

 

  “매우 의심스러워.”

 

  “그럼 난 혁명 따위는 믿지 않겠어. 나는 사랑밖에 믿지 않아.

 

  - pp.65~69. (미도리와 와타나베의 대화)

 

 

 

  “친척 분들이 문병을 오면 여기서 함께 식사를 하거든. 그러면 모두 너처럼 절반쯤은 남겨. 그래서 내가 꿀꺽 모두 먹어치우면 ‘미도리는 기운이 넘쳐 좋겠다. 난 가슴이 꽉 메어서 더 먹을 수가 없는데.’ 라고 말하는 거야. 하지만 병간호를 하고 있는 사람은 바로 나라고. 다 웃기는 소리지. 다른 사람들은 어쩌다 한 번 찾아와 동정만 하다 갈 뿐이잖아. 대소변을 받아내고, 가래를 받아내고, 몸을 닦아주는 건 나란 말이야. 동정만으로 대소변을 받는 일이 해결된다면, 난 남들보다 50배 정도는 동정할 거야. 그런데 내가 밥을 다 먹으면 다들 나를 비난하는 듯한 눈으로 바라보면서 ‘미도리는 건강해서 좋겠다.’는 거야. 다들 내가 무슨 짐수레라도 끌고 다니는 당나귀 정도로 여겨지나 봐. 나이도 먹을 만큼 먹은 사람들이 왜 하나같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는 걸까? 입으로는 무슨 말이든 못 하겠어? 중요한 건 대소변을 받아내느냐의 여부라고. 나도 상처 받을 때가 있다고. 나도 기진맥질할 때도 있고, 마냥 울고 싶을 때도 있다고. 쾌유될 가망도 없는데 의사들이 달려들어 머리를 열어놓곤 이리저리 만져대는 그런 짓을 몇 번이고 되풀이하고, 또 되풀이할 때마다 악화되어서 머리가 점점 이상해져 가는 모습을 눈앞에서 줄곧 지켜보고 있어봐, 견딜 수가 없단 말이야. 게다가 저축해둔 돈은 점점 줄어들어 가지, 앞으로 3년 반이나 남은 대학을 마저 다닐 수 있을지도 알 수 없고, 언니도 이런 상태로는 결혼식도 올리지 못할 거고.”

 

  - p.82. (미도리의 이야기)

 

 

 

  “어떠세요? 맛있지요?”라고 나는 물어보았다.

 

  “맛있어.”라고 그가 말했다.

 

  “음식이 맛있다는 건 좋은 일이에요. 살아 있다는 증거 같은 거죠.

 

  - p.92. (와타나베와 미도리 아버지의 대화)

 

 

 

  따뜻한 침대 속에서 나오코 생각을 하는 건 아주 기분 좋은 일입니다. 마치 내 곁에 나오코가 누워 몸을 웅크리고 곤히 잠들어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그리고 그게 정말이라면 얼마나 근사할까, 하고 생각합니다.

 

  때로 지독하게 외로운 기분이 들기도 하지만, 나는 그런대로 건강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나오코가 매일 아침 새들을 돌보고 밭일을 하는 것처럼, 나도 매일 아침 나 자신의 태엽을 감고 있어요. 침대에서 나와서 이를 닦고, 수염을 깎고, 아침식사를 하고, 옷을 갈아입고, 기숙사 현관을 나서서 학교에 도착할 때까지 나는 대략 서른여섯 바퀴쯤 드르륵드르륵 태엽을 감습니다. 자, 오늘 하루도 열심히 살아보자 하고 생각하는 거예요. 나도 느끼지 못하고 있었는데 난 요즘 들어 곧잘 혼잣말을 하나 봅니다. 아마도 태엽을 감으면서 중얼중얼 뭐라고 지껄이는 거겠죠.

 

  - pp.103~104. (나오코에게 보내는 와타나베의 편지)

 

 

 

  난 일요일에는 태엽을 감지 않는 것이다.

 

  - p.107.



무라카미 하루키(Murakami Haruki) / 소설가
출생 1949년 01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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