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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웨이의숲세트(전2권)
카테고리 소설 > 일본소설 > 일본소설일반
지은이 무라카미 하루키 (문사미디어, 20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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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가사와는 몇 가지 상반되는 특징을 아주 극단적인 형태로 갖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때로는 나조차 감동할 정도로 친절했지만 그와 동시에 지나치게 심술궂은 면이 있었다. 그는 깜짝 놀랄 만큼 고귀한 정신을 갖고 있으면서 동시에 별수 없는 속물이기도 했다. 사람들을 이끌어 낙천적으로 거침없이 앞으로 나아가면서도 그 마음은 고독하고 음울한 진흙 구덩이에서 몸부림치고 있었다. 나는 그런 그의 내면에 있는 이율배반성을 처음부터 명백히 느끼고 있었고, 다른 사람들에게는 어째서 그의 그런 면이 보이지 않는 건지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는 그 나름의 지옥을 부둥켜안고 살고 있는 것이다.

  - pp.72-73


 
  “도시마 구 기타오쓰카 같은 데 사는 건, 학교 전체를 찾아봐도 나밖엔 없었어. 더구나 내 부모의 직업란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어, ‘서점 경영’이라고. 덕분에 반 애들이 모두 나를 두고 몹시 신기해 했지. 읽고 싶은 책을 얼마든지 읽을 수 있어서 좋겠다고. 어처구니 없지 뭐야. 모두가 생각하는 건 기노쿠니야 같은 대형 서점이야. 그 애들은 서점이라면 그런 대형 서점밖엔 상상 못 하는가 봐. 하지만 현실을 말하자면 참담하기 그지없어. 고바야시 서점, 가엾은 고바야시 서점. 드르륵 문을 열면 눈앞에 잡지가 즐비하게 놓여 있는 거야. 제일 꾸준히 팔리는 건 여성 잡지지. 새로운 성性의 기교, 그림과 해설을 곁들인 ‘마흔여덟 가지 성교 체위 특집’이 부록으로 딸린 거야. 동네 주부가 그런 걸 사갖고 가서 주방 탁자 앞에 앉아 숙독을 하곤, 남편이 들어오면 당장 시험해보는 거겠지. 그게 제법 대단한 읽을거리야. 정말이지 세상 부인네들은 무슨 생각을 하며 사는지 몰라. 그리고 만화, 이것도 역시 잘 팔리지. 《매거진》, 《선데이》, 《점프》…… 그리고 물론 주간지들도. 아무튼 거의 전부가 잡지거든. 문고판도 조금 있지만 대단한 건 아니야. 미스터리라든지, 역사물, 풍속물, 그런 것밖엔 팔리지 않거든. 그리고 실용 서적 같은 것, 바둑 두는 법, 분재 가꾸기, 결혼식 주례법, 이것만은 꼭 알아야 할 성생활, 담배는 곧 끊을 수 있다 등등. 그리고 우리 집에선 문방구까지 팔고 있어. 계산대 옆에 볼펜이라든지 연필이라든지 노트라든지 그런 걸 진열해놓고 말이야. 그것뿐이거든. 《전쟁과 평화》도 없고, 《성적 인간》*도 없고, 《호밀밭의 파수꾼》도 없지. 그게 고바야시 서점이야. 그런 것들만 팔고 있는데 도대체 뭐가 부럽다는 거야? 자기도 부러워?”

 

* 1994년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오엔 겐자부로의 대표작.

 

  - pp.134~135 미도리의 말



  “부자의 최대 이점이 뭐라고 생각해?”

  “모르겠는데.”

  “돈이 없다고 말할 수 있다는 거야. 가령 내가 반 친구한테 뭘 좀 하자고 하면 상대는 이렇게 말한단 말이야. ‘나 지금 돈이 없어서 안 돼.’라고. 그런데 내가 그런 입장이 되면, 절대 그런 소리를 못하게 돼. 내가 가령 ‘지금 돈이 없어.’ 그런다면, 그건 정말 돈이 없다는 소리니까 비참해질 뿐이지. 예쁜 여자가 ‘나 오늘은 얼굴이 엉망이니까 외출하고 싶지 않아.’라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인 거지. 못생긴 여자가 그런 소릴 해봐, 웃음거리만 될 뿐이지. 그런 게 내가 있던 세계였던 거야. 작년까지 6년간이나.”

 
- p.137 와타나베와 미도리의 대화



무라카미 하루키(Murakami Haruki) / 소설가
출생 1949년 01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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