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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임홍빈 옮김, 《노르웨이의 숲 (上)》, 문사미디어(2008).


노르웨이의숲세트(전2권)
카테고리 소설 > 일본소설 > 일본소설일반
지은이 무라카미 하루키 (문사미디어, 20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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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읽어보면 아시겠지만, 제가 여기서 그려내고 싶었던 것은, 사람이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의 의미입니다. 그것이 이 소설의 간명한 테마입니다. 그러나 저는 그와 동시에 한 시대를 감싸고 있는 분위기라는 것도 그려보고 싶었습니다. 사람을 진실로 사랑한다는 것은 자아의 무게에 맞서는 것인 동시에, 외부 사회의 무게에 정면으로 맞서는 것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하는 것은 참 가슴 아픈 일이지만, 누구나 그 싸움에서 살아남게 되는 건 아닙니다.

  - p.6 (〈한국어판에 부치는 저자의 서문〉 중)



  게다가 그다지 재미있지도 않은 상대의 이야기에서 재미있는 부분을 얼마든지 찾아낼 수 있는, 다른 사람들은 좀처럼 갖기 어려운 재능도 지니고 있었다. 그래서 그와 이야기하고 있으면, 나는 나 자신이 아주 재미있는 사람이고, 재미있는 인생을 보내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곤 했다.

  - p.51

   


 

  죽음은 삶의 반대편 극단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일부로서 존재하고 있다.

 

  말로 해버리면 평범하지만, 그때의 나는 그것을 말로서가 아니라 하나의 공기 덩어리로서 몸속으로 느꼈던 것이다. 문진 속에도, 당구대 위에 나란히 놓여 있는 네 개의 빨간색과 하얀색 공 안에도 죽음은 존재하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마치 미세한 티끌처럼 폐 속으로 들이마시면서 살고 있는 것이다.

 

  그때까지도 나는 죽음이라는 것을, 완전히 삶으로부터 분리된 독립적인 존재로 파악하고 있었다. 즉 ‘죽음은 언젠가는 확실히 우리를 그 손아귀에 사로잡는다. 그러나 거꾸로 말하면, 죽음이 우리를 사로잡는 그날까지 우리는 죽음에 붙잡히는 일이 없는 것이다.’라고. 그것은 나에겐 지극히 당연하고 논리적인 사고방식처럼 생각되었다. 삶은 이편에 있으며, 죽음은 저편에 있다. 나는 이편에 있고, 저편에는 없다.

 

  그러나 기즈키가 죽은 밤을 경계로 해서, 나로선 이제 그런 방법으로 죽음과 삶을 이해할 수 없게 되어버렸다. 죽음은 삶에 대극對極하는 존재 따위가 아니었다. 죽음은 ‘나’라는 존재 속에 본질적으로 내재되어 있는 것이며, 그 사실은 아무리 노력한다 해도 망각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열일곱 살의 5월 어느 날 밤에 기즈키를 사로잡은 죽음은, 그와 동시에 나를 사로잡았던 것이다.

 

  나는 그런 공기 덩어리를 몸속으로 느끼면서 열여덟 살의 봄을 보내고 있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심각해지지 않으려고도 노력하고 있었다. 심각해진다는 것이 반드시 진실에 다가가는 것과 같은 뜻이 아니라는 것을, 나는 어슴푸레하게나마 깨닫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봐도 죽음은 심각한 사실이었다. 나는 그런 숨 막히는 배반성背反性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끝없이 같은 자리에서 맴돌고 있었다. 이제 와서 생각하면 확실히 기묘한 나날이었다. 삶의 한복판에서 모든 것이 죽음을 중심으로 회전하고 있었던 것이다.

  - pp.56-58


무라카미 하루키(Murakami Haruki) / 소설가
출생 1949년 01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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