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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나는 쐐기풀 같은 고통을 뽑지 않을 것이다
카테고리 시/에세이
지은이 버지니어 울프 (솔, 199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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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8

 

 

3월 12일 토요일

 

  히틀러가 오스트리아를 침공했다. 즉, 어젯밤 10시 그의 군대가 저항없이 국경을 넘었다. 오스트리아의 국가가 마지막으로 라디오에서 들렸다. 우리는 비엔나로부터 무도곡을 잠깐 들었다. 이 사실은 더러운 물방울들이 뒤섞이듯이 러시아의 재판과 섞여서 나의 아침에 가시를 박았다. 노트를 보면서 보낸 까다로운 아침이었다.

 

 

9월 13일 화요일

 

  아직 전쟁은 아니다. 히틀러는 허풍떨고 붐을 일으키지만 아직까지 진짜 한 방을 쏘지는 않았다. 단지 격렬한 지껄임, 그리고 잠잠해진다. 우리는 끝까지 들었다. 죄책감에 시달리는 사람처럼 야만적 울부짖음, 그리고 청중들로부터의 울부짖음, 그리고 더 사이를 떼어놓은, 더 잰 듯한 문장들. 그러자 또 다른 고함 소리. 곤봉으로 지배되는 환호성. 그 얼굴들을 생각하니 겁이 났고 그 목소리도 무서웠다. 하지만 그 연설은 용두사미격이었고 우리는 한두 마디만 알아들었다. 다음이 일반적인 예언인 것 같다. 즉, 히틀러는 감히 경계선을 넘지 못한다. 그것에 바짝 가까이 서서 모욕적인 언사만 떠들어대고 있다. 사람들이 어떻게 이런 넌센스를 참아낼 수 있는가? 만약 어쩌고저쩌고 하면 그는 무력을 사용하겠다는 위협하에 협상을 진행중이다.

 

 

9월 16일 금요일

 

  쳄버레인이 히틀러를 만나러 갔다. 대부분 안도와 승인. 아직 뉴스는 없다. 사람들은 이것이 평화를 의미한다고 말한다. 어제 런던에서 『이브닝 스탠다드』지 자막에 크게 평화라고 씌어져 있었다. 에디의 책을 위해서 내가 마분지를 살 때 롱 에이커 가게 주인이 전쟁은 없을 거요라고 말했다. 로신스키는 그들이 양보할 거라고 말했다. 히틀러는 자기 평판을 잃지 않을 것이며 체코슬로바키아인들은 희생될 것이다. 전쟁은 1년 간 지연될 것이다. 그러나 라디오가 방문의 결과를 발표하기 전까지는―그리고 오늘 밤 또 다른 발표가 있을 예정이다―오늘 밤 우리는 또다시 일을 멈추고 들을 것이다.

 

 

 

1939

 

 

1월 29일 일요일

 

  그래, 바르셀로나가 함락되었다. 히틀러는 내일 연설할 것이고 다음번 리허설이 시작되겠지. 나는 지난 사흘 간 폴리낙 공주와 마리 스톱스와 필립과 피핀 그리고 프로이트 박사를 만났다. 그리고 또한 톰을 저녁 식사에 초대했고 그리고 에이드리언의 파티에 갔다.

  프로이트 박사는 나에게 수선화를 주었다. 꼼꼼하게 정돈되고 반짝거리는 커다란 책상 위에 작은 조각들이 있는 거대한 서재에 앉아 있었다. 우리는 환자처럼 의자에 앉았다. 그는 비틀어지고 쪼그라든 아주 늙은 노인이었다. 빛나는 원숭이 눈을 하고 마비된 간헐적인 움직임. 말은 분명하지 않았으나 그래도 주의 깊었다. 히틀러에 대해서. 독이 작용하려면 한 시대가 필요하지. 그의 저서에 관해서. 명성? 나는 유명하기보다는 악명이 높았지. 그의 첫 저술로 50파운드도 받지 못했다고 한다. 어려운 대화였다. 그리고 인터뷰. 딸과 마틴이 도왔다.* 거대한 가능성―내 말은, 예전의 불길이 이제야 깜빡거리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우리가 떠날 때 그는 자신의 입장을 거론했다―당신들은 어떻게 하려고 하오? 그 물음은, 즉 우리 영국인들과 전쟁에 대한 것이었다.

 

 

* 역주 : 여든두 살인 프로이트는 부유하고 영향력 있던 자신의 제자인 그리스 조지 왕의 부인 마리 보나파르트 공주의 도움으로 나치 치하의 비엔나를 작년 여름에 떠났다. 막내딸인 안나 프로이트(1895~1982)와 함께 그는 현재 런던에서 살고 있다. 마틴은 프로이트의 큰아들(1889~1967)이다. 호가스 출판사는 1924년 이후 프로이트 작품의 영어판 출판사였다.

 

 

1월 30일 월요일

 

  당신들이 전쟁에서 이기지 않았더라면 사태가 더 나빠졌을 거라고 프로이트는 말했다. 우리는 때로 죄의식을 느낀다고 나는 말했다. 아마 히틀러는 그러지 않았을 거예요, 만약 우리가 졌더라도요. 그럼, 그렇지 않지라고 그는 매우 강조해서 대답했다―그자는 무한히, 훨씬 더 형편없었을 거야.

  그들은 3개월 간 떠날 생각인데 24시간 안에 마음을 정할 것이라고 했다. 어떤 판사가 범죄자에게 프로이트 책 중 20권을 읽으라고 판결을 내렸다는 사건을 레너드가 언급하자 그는 아주 관심을 보였다. 보나파르트 공주가 그에게 이 거대하고 조용한 햄스테드 저택을 주었다고 에이드리언이 말해주었다. "하지만 비엔나에 있는 우리 아파트만큼 이곳이 좋지는 않아요"라고 안나가 말했다. 어떤 부담감. 모든 피난민은 가능한 빵부스러기를 향하여 주둥이를 내미는 갈매기와 같다. 마틴과 그의 소설. 안나와 그녀의 책. 후원자로서 우리도 역시 부담스럽다.

 

 

4월 13일 목요일

 

  나는 어린 시절과 등등에 관한 첫 40페이지를 일주일도 안 되어 썼다. 하지만 그건 거의 자서전이다. 이제 정치가 절박하다. 오늘 하원에서 쳄버레인이 연설할 것이다. 전쟁이 당장 내일은 아니지만 가까운 장래에 있을 것 같다. 오늘 찰스턴으로 차를 마시러 간다. 레너드는 어제 브라이튼으로 가서 병상에 누운 로빈스 양과 오래 이야기를 했는데 매우 흥미 있었다고 했고, 그래서 내가 그걸 놓친 것이 안타까웠다. 하지만 여기에 홀로 남아 있게 되어 기뻤다. 만약 열흘 동안 나 자신을 잡아놓을 수만 있다면…… 나흘 동안 21도가 넘는 완전한 여름의 열기 끝에 이제 날씨가 약간 어두워진다. 벽 위에서 쉼표 모양의 나비가 해를 쬐고 있다. 레너드의 두드러기가 나아졌다. 우리는 마카로니만 먹고 산다.

 

 

8월 28일 월요일

 

  공굴리기를 하고 나는 여기 밖에 머물면서 말하려 한다―무엇을? 아마도 이 평화의 마지막 밤이 될 지금에 관하여. 오늘 밤 9시 뉴스가 이 모든 것을 끝낼까?―우리의 삶과, 오, 그래, 앞으로 50년 동안의 모든 것을. 이 마지막 날에 대하여 모두들 쓰고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나는 평야를 걸었다. 옥수숫대 아래 누워서 텅 빈 땅과 완전히 푸른 여름날 오후 하늘에 떠 있는 분홍 구름을 쳐다보았다. 아무 소리도 없었다. 길에서 일꾼들이 전쟁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한 사람은 찬성이고 한 사람은 반대였다. 그래서 공굴리기를 했고 나는 행복했다. 나는 바깥 정원에서 뭐라고 할까? 멍한 상태다. 비타는 처음에는 공포와 전율이 되살아나다가 그 다음 꺼져버렸다고 말했다. 우리는 현재 작은 섬에 있는 것과 같다. 우리 중 누구도 육체적인 두려움은 갖고 있지 않다. 꼭 그래야 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광활하고 고요하고 차가운 암울함이 있다. 그리고 긴장감. 마치 의사의 판결을 기다리는 것 같은. 그리고 젊은이들―젊은이들이 산산조각이 나고 있다. 하지만 요점은, 우리는 너무나 마비되어서 생각할 수가 없다는 점이다. 런던은 활기 차 보였다. 대부분의 사람은 멍한 채 표면적으로는 낙관주의를 지니고 있었다. 휴 슬레이터는 전쟁이 없을 것이라는 예감이 든다고 어제 말했다. 늙은 클라이브는 테라스에 앉아서 "난 전쟁을 겪으며 살고 싶지는 않아"라고 말했다. 자신은 이미 최고로 좋은 때를 경험했다면서 자신의 인생이 물러간다고 했다. 개인적으로 우리는 아주 만족하고 있다. 하루하루가 더없는 기쁨이다. 그래서 행복한 채 저녁을 요리하고 책을 읽고 공놀이를 한다. 애국적인 감정은 없다. 전쟁 동안 어떻게 계속 나아갈 것이가―그것이 문제다.

 

 

8월 30일 수요일

 

  아직 전쟁은 아니다. 어제 의회가 열렸다. 협상. 우리는 단호하다. 잠시 휴식. 레너드와 나는 방송에서 들은 것을 토의하면서 오르락내리락했다. 매우 어두웠다가 그 다음 좀 나아졌다. 오늘 아침 레너드는 나보다 더 비관적이다. 그는 히틀러가 도발하기로 결심했다고 생각한다. 어젯밤 독일로부터 분노하는 목소리들이 다시 시작되었다. 그가 맹렬한 독설을 퍼부을 때 작년의 광기 서린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동시에 8페이지의 답신이 내각으로 어젯밤 보내졌다. 이번에 프랑스는 빠졌다.

 

 

9월 1일 금요일

 

  오늘 아침 우리에게 전쟁이 닥쳤다. 히틀러가 댄지그를 점령했다. 폴란드를 공격했고, 또 공격하고 있다. 우리 의회가 오늘 밤 6시에 모인다. 런던에서 하루를 의심과 희망 속에 가라앉아 있다가 이걸 쓴다. 어젯밤 우리는 폴란드에 대한 조약을 읽는 것을 들었다. 그렇다면 약간의 희망이 있는 모양이다. 지금 1시인데 나는 안에 들어가서 전쟁이 선포되는 것을 들으려 한다.

 

 

  - 200~208쪽.



버지니아 울프 (Adeline Virginia Woolf) / 소설가
출생 1882년 1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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