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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개 숙인 수정주의(한국 현대사의 역사사회학)
카테고리 정치/사회
지은이 전상인 (전통과현대, 200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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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전쟁에 대한 사회사적 접근이 거의 전무한 까닭은 우리 학계가 부지불식간에 구미(歐美)의 연구경향을 추종해 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는 한국전쟁 연구 자체를 우리가 선도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기인한다. 전쟁이 끝난 뒤 우리는 감정적 차원의 증오심과 적개심만 키워왔을 뿐, 한국전쟁을 학문적 논의의 대상으로 삼는 데는 크게 소홀하였다. 한국전쟁 연구가 처음 본격적으로 시작된 곳은 오히려 미국이었고, 그것도 좌파 수정주의의 세례를 통해서였다. 그리하여 한국전쟁 연구의 초점은 그것의 기원이나 발발, 혹은 냉전과 국제정치에 맞춰지게 된 것이다. 그 결과, 한국전쟁에 대한 가설이 난무하고 관점이 무성한 반면, 한국전쟁 연구의 진짜 알맹이가 되어야 할 일반 한국인들의 처참한 고통과 처절한 고난은 간과되고 말았다.


  바깥 장단에 놀아나느라 그 동안 국내 학계는 한국전쟁에 대해 제대로 작명(作名) 한번 해본 적도 없다. 따지고 보면 '한국전쟁'이라는 용어부터가 문제다. 도대체 역사상 한반도 내에서 벌어진 전쟁으로서 1950-53년의 것이 유일하다는 말인가. 한국전쟁은 분명 외국인의 시각에서 붙여진 이름으로 '우리의 전쟁'을 마치 '남의 일'처럼 만들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제부턴가 모두들 6·25 대신 한국전쟁이라 부르는 데 익숙해져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그러다 보니 우리의 선대(先代)가 전시에 실제로 경험한 것을 주체적 시야에서 복원하려는 노력에는 눈길 한 번 제대로 주어지지 않았다. 한국전쟁의 사회사적 접근이야말로 따라서 한국전쟁 연구의 주권을 회복하고 연구방법과 연구대상을 토착화시킬 뿐만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전쟁의 교훈까지 생생하게 되살릴 수 있는 중차대한 과제이다.

 

- 전상인, 「한국전쟁의 사회사를 위하여」, 『고개숙인 수정주의 - 한국현대사의 역사사회학』, 전통과 현대(2001), 236~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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