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카테고리 소설 지은이 공지영 (푸른숲, 2005년) 상세보기 알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외삼촌이 슬픈 어조로 내게 충고했듯이 깨달으려면 아파야 하는데, 그게 남이든 자기 자신이든 아프려면 바라봐야 하고, 느껴야 하고, 이해해야 했다. 그러고 보면 깨달음이 바탕이 되는 진정한 삶은 연민 없이 존재하지 않는 것 같았다. 연민은 이해 없이 존재하지 않고, 이해는 관심 없이 존재하지 않는다. 사랑은 관심이다. 정말 몰랐다고, 말한 큰오빠는 그러므로 나를 사랑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나를 업어주고, 나에게 아이스크림을 사주고, 언제나 나를 걱정한다고 말했지만, 내가 왜 그렇게 변해가는지 그는 모르겠다, 라고만 생각했을 뿐이었다. 그러므로 모른다, 라는 말은 어쩌면 면죄의 말이 아니라..
그 무렵 [이코니온에서는] 다른 민족 사람들과 유다인들이 저희 지도자들과 더불어 사도들을 괴롭히고 또 돌을 던져 죽이려고 하였다. 바오로와 바르나바는 그 일을 알아채고 리카오니아 지방의 도시 리스트라와 데르베와 그 근방으로 피해 갔다. 그들은 거기에서도 복음을 전하였다. 리스트라에는 두 발을 쓰지 못하는 사람이 하나 있었는데, 그는 앉은뱅이로 태어나 한 번도 걸어 본 적이 없었다. 그가 바오로의 설교를 듣고 있었는데, 그를 유심히 바라본 바오로는 그에게 구원받을만한 믿음이 있음을 알고, "두 발로 똑바로 일어서시오." 하고 큰 소리로 말하였다. 그러자 그가 벌떡 일어나 걷기 시작하였다. 군중은 바오로가 한 일을 보고 리카오니아 말로 목소리를 높여, "신들이 사람 모습을 하고 우리에게 내려오셨다." 하고 ..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참포도나무요 나의 아버지는 농부이시다." 나에게 붙어 있으면서 열매를 맺지 않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다 쳐 내시고, 열매를 맺는 가지는 모두 깨끗이 손질하시어 더 많은 열매를 맺게 하신다. 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한 말로 이미 깨끗하게 되었다. 내 안에 머물러라. 나도 너희 안에 머무르겠다.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않으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는 것처럼, 너희도 내 안에 머무르지 않으면 열매를 맺지 못한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는다. 너희는 나 없이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내 안에 머무르지 않으면 잘린 가지처럼 밖에 던져져 말라 버린다. 그러면 사람들이 그런 가지들을 모아 불에..
요한복음, 14,1-6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 마음이 산란해지는 일이 없도록 하여라. 하느님을 믿고 또 나를 믿어라. 내 아버지의 집에는 거처할 곳이 많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너희를 위하여 자리를 마련하러 간다고 말하였겠느냐? 내가 가서 너희를 위하여 자리를 마련하면, 다시 와서 너희를 데려다가 내가 있는 곳에 너희도 같이 있게 하겠다. 너희는 내가 어디로 가는지 그 길을 알고 있다." 그러자 토마스가 예수님께 말하였다. "주님, 저희는 주님께서 어디로 가시는지 알지도 못하는데, 어떻게 그 길을 알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 * 오늘의 묵상 삶의 활기는 나이와 무관합니다...
페스트 카테고리 소설 지은이 알베르 카뮈 (책세상, 1998년) 상세보기 처음으로 ‘페스트’라는 말이 이제 막 사람들의 입 밖에 나왔다. 베르나르 리유를 그의 집 창 너머에 앉혀놓고 있는 이야기의 이 대목에서, 서술자가 그 의사의 의아해하고 놀라워하는 심정에 충분한 근거가 있다고 지적하는 것을 허락해주기 바란다. 왜냐하면 몇몇 뉘앙스에 있어서는 다소 차이가 있겠지만 그가 보이고 있는 반응은 우리 대부분의 시민들의 반응 바로 그것이었기 때문이다. 사실 재앙이란 모두가 다 같이 겪는 것이지만 그것이 막상 우리의 머리 위에 떨어지면 여간해서 믿기 어려운 것이 된다. 이 세상에는 전쟁만큼이나 많은 페스트가 있어왔다. 그러면서도 페스트나 전쟁이나 마찬가지로 그것이 생겼을 때 사람들은 언제나 속수무책이었다. 따라서..
고개 숙인 수정주의(한국 현대사의 역사사회학) 카테고리 정치/사회 지은이 전상인 (전통과현대, 2001년) 상세보기 "이 글에서 '한국전쟁'이라는 명칭은 편의적으로 선택되었다. 엄밀하게 말해 한국전쟁이라는 호칭은 외국, 특히 미국의 시각을 반영하는 것이다. 한국전쟁이라는 개념이 타당성을 얻기 위해서는 우선 역사상 한반도에서 벌어진 전쟁으로서 1950-53년의 것이 유일한 것이어야만 한다. 사실상 한국전쟁이라는 용어는 미국이 한반도에서 한민족과 '맞서' 싸운 전쟁을 뜻한다. 미국은 이미 1871년의 신미양요를 한국전쟁이라 불렀거니와(백성현·이한우, 1999:331 참조), 1980년대 이후 한국전쟁 연구를 본격화한 미국의 수정주의 학파에서는 1950년대의 한국전쟁을 한국전쟁이라는 이름으로 못박는 데 결정적..
고개 숙인 수정주의(한국 현대사의 역사사회학) 카테고리 정치/사회 지은이 전상인 (전통과현대, 2001년) 상세보기 한국전쟁에 대한 사회사적 접근이 거의 전무한 까닭은 우리 학계가 부지불식간에 구미(歐美)의 연구경향을 추종해 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는 한국전쟁 연구 자체를 우리가 선도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기인한다. 전쟁이 끝난 뒤 우리는 감정적 차원의 증오심과 적개심만 키워왔을 뿐, 한국전쟁을 학문적 논의의 대상으로 삼는 데는 크게 소홀하였다. 한국전쟁 연구가 처음 본격적으로 시작된 곳은 오히려 미국이었고, 그것도 좌파 수정주의의 세례를 통해서였다. 그리하여 한국전쟁 연구의 초점은 그것의 기원이나 발발, 혹은 냉전과 국제정치에 맞춰지게 된 것이다. 그 결과, 한국전쟁에 대한 가설이 난무하고 관점이 무성..
향락의전이(개역판) 카테고리 인문 지은이 슬라보예 지젝 (인간사랑, 2002년) 상세보기 ……(전략)…… 1992년 가을, 내가 미국의 대학에서 히치코크에 대한 강의를 한 직후 청중의 한 명이 나에게 분개하여 질문하였다. 옛 조국이 화염 속에서 죽어가고 있을 때, 어떻게 당신은 그렇게 하찮은 주제를 말할 수 있는가? 나의 답변은 미국에 있는 당신이 히치코크에 대해서 말할 수 있는 것은 왜 그런가였다. 나에게는 희생자와 어울려 행동하고 나의 조국에서의 끔찍한 사건들을 증명할 그 어떤 심적 외상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한 행동은 일종의 자기애적 만족--즉, 상황이 나에게 나쁘게 진행될 때 나의 청중은 더할 나위 없이 좋다는 그들의 인식에 대한--의 부정인 동정과 거짓 죄책감을 불러일으키지 않을 수 없다. 그..
역사정치학 카테고리 역사/문화 지은이 시노하라 하지메 (산해, 2004년) 상세보기 립셋과 로칸의 분석에 따르면 유럽의 정당을 나누어주는 네 개의 분쟁이 있다. 그것들은 중앙과 주변, 교회와 국가, 토지 소유와 산업이익, 산업부르주아와 노동자 계급인데, 서유럽의 정당제는 이들 분쟁들이 언제 어떠한 형태로 발생하고 해결되었는가에 따라 결정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들 분쟁들은 아일랜드 독립 이전의 대영 제국에는 타당하지만, 1921년 이전의 아일랜드는 전형적인 주변부이며 또 압도적으로 가톨릭이 지배하는 지역인데다 산업 혁명도 이루어지지 않은 농업지대이며, 따라서 아일랜드는 그런 분쟁을 경험하지 않았다. 따라서 아일랜드는 특수한 정치 형태를 택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에 대해 아일랜드를 특수한 국가로 생각하는 ..
역사정치학 카테고리 역사/문화 지은이 시노하라 하지메 (산해, 2004년) 상세보기 그런데 제2차 세계대전 직전의 상황은 확실히 제1차 세계대전의 그것과는 달랐다. 20세기 전반의 생생한 유럽 역사에 대해 가장 뛰어난 증인 슈테판 츠바이크(S. Zweig)는 자신의 회고록 『어제의 세계』에서 그런 차이점을 다음과 같이 선명하게 그려내고 있다. "1914년의 여름은, 그것이 유럽에 가져다준 재앙이 없었어도, 우리에게는 여전히 잊을 수 없는 여름이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그해 여름만큼 풍부하게 느끼고 또 아름다운, 뭐랄까 정말 여름다운 여름을 체험한 적이 드물기 때문이다. 매일 하늘은 마치 비단처럼 투명하게 푸르렀으며, 공기는 부드러웠지만 지나치게 덥지는 않았으며, 목장은 향기로이 따뜻했으며, 초록의 수..
그래도 나는 쐐기풀 같은 고통을 뽑지 않을 것이다 카테고리 시/에세이 지은이 버지니어 울프 (솔, 1996년) 상세보기 1938 3월 12일 토요일 히틀러가 오스트리아를 침공했다. 즉, 어젯밤 10시 그의 군대가 저항없이 국경을 넘었다. 오스트리아의 국가가 마지막으로 라디오에서 들렸다. 우리는 비엔나로부터 무도곡을 잠깐 들었다. 이 사실은 더러운 물방울들이 뒤섞이듯이 러시아의 재판과 섞여서 나의 아침에 가시를 박았다. 노트를 보면서 보낸 까다로운 아침이었다. 9월 13일 화요일 아직 전쟁은 아니다. 히틀러는 허풍떨고 붐을 일으키지만 아직까지 진짜 한 방을 쏘지는 않았다. 단지 격렬한 지껄임, 그리고 잠잠해진다. 우리는 끝까지 들었다. 죄책감에 시달리는 사람처럼 야만적 울부짖음, 그리고 청중들로부터의 울부..
* 굵은 글씨로 강조한 부분은 옮겨 적으며 제가 한 것입니다. 원문과는 관계 없습니다. 극단의 시대(상): 20세기 역사 카테고리 역사/문화 지은이 에릭 홉스봄 (까치, 2009년) 상세보기 확실히 전쟁의 총력전적인 성격과, 양쪽 편 모두 비용에 상관없이 무제한적으로 전쟁을 수행하려는 결의가 자신의 흔적을 남겼다. 그것 없이는 20세기의 더해가는 야수성과 비인간성에 대해서 설명하기가 어렵다. 1914년 이후에 야수성이 계속 상승곡선을 그렸다는 점만큼은 불행히도 전혀 의심할 바 없다. 20세기 초까지는 서유럽 전역에서 고문이 공식적으로 사라졌다. 그러나 1945년 이후에 우리는 국제연합 회원국들 중 적어도 3분의 1―가장 오래되고 가장 문명화된 몇몇 회원국들을 포함해서―에서 고문이 행해지는 것을 보는 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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